속초 청초호를 걷다 보면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르는 듯한 장소를 만난다.
한쪽에는 잘 정비된 호수공원과 산책로가 있고 물 위에는 요트가 떠 있다. 그런데 호숫가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오래된 건물과 녹슨 장비, 물가를 향해 길게 놓인 레일이 나타난다.
속초 칠성조선소다.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배를 만들고 고쳤다. 일을 하던 사람들은 떠났고 망치 소리도 멈췄지만,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녹슨 기계와 낡은 레일, 오래된 건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한 시대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왜 청초호에 조선소가 생겼을까
칠성조선소의 시작을 알려면 1950년대 속초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속초에는 함경도와 북쪽 강원도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여들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필요했다.
당시 청초호는 바다와 이어져 배가 드나드는 포구였다.
속초 앞바다에서는 명태와 오징어 등이 잡혔다. 어부가 늘자 배가 필요했고, 배가 늘어나자 그것을 만들고 고치는 일도 함께 늘었다. 청초호 주변에 조선소가 자리 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속초 칠성조선소를 세운 최칠봉 역시 함경남도 원산 출신의 실향민이었다. 원산에서 배 만드는 기술을 익혔던 그는 형제들과 함께 청초호 서쪽 호숫가의 뻘밭을 메워 1952년 조선소를 열었다.
처음 내건 이름은 고향을 딴 ‘원산조선소’였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면서도 생업의 이름에는 떠나온 고향을 남겼다.

조선소에서는 배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조선소에서는 새 배를 만들었고, 바다에서 상한 배를 고쳤다.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조업하는 배는 끊임없이 손볼 곳이 생겼다. 다시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칠성조선소는 1952년부터 2017년까지 그렇게 배를 만들고 고쳐 바다로 돌려보냈다.
배 한 척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노동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나무를 골랐고 누군가는 그것을 잘랐다. 배의 뼈대를 만들고 판재를 붙이는 사람이 있었고, 철을 두드리고 기관을 손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배는 레일을 따라 청초호로 내려갔다. 청초호와 등대를 지나 속초 앞바다로 나간 배에는 다시 어부들이 올랐다.
그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잡아 온 수산물은 항구에 내려지고 시장으로 옮겨져 누군가의 식탁에 올랐다. 배를 만드는 사람과 배를 타는 사람, 수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조선소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속초 수산업과 함께 전성기를 맞다
속초의 어업이 활기를 띠면서 칠성조선소도 성장했다.
당시 청초호 주변에는 칠성조선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조선소와 목재소가 들어서면서 어업을 뒷받침하는 산업 공간이 형성됐다.
그 가운데 칠성조선소는 3대에 걸쳐 이어졌다. 처음에는 목선을 만들었다. 나무를 다듬어 배의 뼈대를 만들고 판재를 이어 붙여 거친 바다를 견딜 수 있는 배를 완성했다.
배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었다.
배 한 척이 만들어져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터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어부와 그 가족에게는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것은 배만이 아니었다. 그 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도 함께 만들어졌다.

목선의 시대가 저물다
그러나 바다를 오가는 배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오랫동안 어선을 만드는 주된 재료였던 나무의 자리를 철과 새로운 소재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어획량이 줄고 어업 환경도 달라졌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목선을 만들던 조선소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속초 칠성조선소 역시 그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목선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철선을 제작하고 수리하며 조선소의 일을 이어 갔다.
이 지점에서 칠성조선소의 역사는 한 조선소의 흥망을 넘어 속초라는 도시의 변화와 겹쳐진다.
실향민들이 모여들었던 도시에서 수산업이 성장했고, 어선이 늘어나면서 조선소가 번성했다. 이후 어업 환경과 선박 제작 방식이 달라지면서 조선소의 역할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속초가 관광도시로 변한 지금, 배를 만들던 자리에는 여행자들이 찾는다. 칠성조선소라는 작은 공간에 속초가 지나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셈이다.
사람은 떠나고 도구는 남는다
한때 이곳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나무를 자르는 소리, 쇠를 두드리는 소리, 기계를 움직이는 소리. 일하는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와 완성된 배가 물로 내려가는 소리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녹슨 장비와 낡은 레일, 쇠 밧줄이 남았다. 사람의 손이 멈추면 도구도 쓸모를 잃는다. 움직이지 않는 기계는 더 이상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배가 지나가지 않는 레일도 본래의 역할을 잃는다.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면 쓸모를 잃은 물건이 이야기를 갖기 시작한다.
쇠에 내려앉은 녹은 오랫동안 비와 바람을 맞아 온 시간을 보여준다. 닳고 반들반들해진 표면에는 누군가 수없이 만지고 움직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래된 도구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 도구를 사용했던 사람을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것을 남긴다는 것
칠성조선소는 2018년부터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이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을 수도 있다. 오래된 흔적을 말끔하게 복원해 과거의 모습을 재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장소가 가진 시간은 새것처럼 만드는 순간 오히려 희미해질 때가 있다.
녹슨 철은 녹슨 채로, 오래된 벽은 오래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간 시간도 함께 남는다.
낡음은 반드시 없애야 하는 흔적만은 아니다.
사람에게 주름이 생기듯 건물에는 균열이 생기고 쇠에는 녹이 슨다. 그 흔적을 모두 지운다면 세월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지워질지 모른다. 칠성조선소에는 이제 쓸모를 잃은 낡고 녹슨 장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는 무심한 듯, 무거운 침묵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끝내 드러나는 감정이 있듯 그 침묵 속에서도 누군가의 손길과 땀, 고민의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흔적을 바라보고 있으면 완성된 배가 레일을 따라 청초호를 향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그 배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그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을 것이다.
망치 소리가 사라진 오후
오후가 되면 녹슨 쇳덩어리 위로 햇빛이 내려앉는다. 붉게 녹슨 장비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청초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부두를 지난다.
한때 사람들의 목소리와 망치 소리로 가득했을 그 자리를 이제 여행자들이 천천히 걷는다.
풍경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청초호의 잔잔한 물과 녹슨 기계를 바라보다 보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배를 만들던 사람, 그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사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마음 한편에 품고 이곳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던 사람들.
그들은 이제 이곳에 없다. 다만 그들이 만지고 움직였던 것들이 남아 그 시간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한 장소를 오래 바라보며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시간을 잠시 상상해 보는 일. 속초 칠성조선소에서는 그런 여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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